티스토리 툴바



Pulse of Terror

쓰래쉬 메탈(thrash metal)이 뭐더라, 음. '트래쉬 메탈' 말고. 영어 발음이 천차만별이라곤 하지만 대체 어느 곳에서 'th'를 '트'로 읽는지 아는 사람 있으면 귀뜸 좀. 트래쉬 메탈이라니 '쓰레기'란 소리도 아니고. 아, '대중'에겐 그 뜻이려나? 그럴싸한 해석이지만 각설하고, 애니웨이, 아무튼. 일반적으론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쉬 헤비 메탈(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에 펑크/하드코어의 영향력이 더해진 음악이라고들 한다. 뭐가? 뭐긴, 쓰래쉬 메탈이지. 간단히 말하면 더 빠르고, 더 날이 선 그리고 좀 더 날 것 그대로의 헤비 메탈이 바로 쓰래쉬 메탈이라고 해도 괜찮을 거다. 물론 이런 장르 놀음은 역사적 해석이자 방대한 경향성에 대한 분석이고 큰 틀에서 바라본 설명일 뿐 한 장르 안에도 다양한 소집단이 존재하는 데다, 개별 밴드 수준에서 그 차이는 천차만별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러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자꾸 되도 않는 글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잠깐 숨 좀 쉬고. 후웁.

더 빠르게, 더 거칠게, 더 날 것처럼! 쓰래쉬 메탈의 모토라면 모토일 텐데, 이와는 사뭇 동떨어진 듯 들리는 쓰래쉬 메탈로 일가를 이룬 이들이 있다. 조금 덜 거칠고, 덜 빠르더라도 정교하고 굴곡진 구성에 신경을 쓴 밴드들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리어 지역에서 이러한 경향의 밴드가 유독 눈에 띄었던 탓에 지금 우린 그들을 베이 에리어 쓰래쉬 메탈(Bay Area thrash metal)이라고도 한다. 뭐, 다들(?) 아는 이야기를 하며 왜 자꾸 글을 늘어지게 쓰는지 알 수가 없는데. 다시 한 번, 심호흡, 후웁. 정신차리고, 그러니까. 바로 우리의 웬수 같은 호프 'METALLICA'가 바로 그 대장이라면 대장인데. Master of Puppets와 ...And Justice for Alll을 안 들어본 휴먼비잉이 아우어 머더 어스에서 리빙하고 있진 않겠지. 전설은 아니어도 레전드 쯤은 되는 밴드이고 음반 아닌가. 물론 METALLICA가 공룡이 된 데에는 환상 속의 팝튠으로 무장한 깜장 앨범의 노릇이 가장 컸고, 그 이후론 도무지 정신을 못차리며 쓰래쉬 메탈이라 하기 힘든 음악으로 일관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도무지 정리를 못하고 헤맸어도 드디어 이 꿍시렁의 주인공 TORMENTER가 나올 차례다. 이들은 캘리포니아는 캘리포니아인데 베이 에리어보다는 약간(?) 밑 동네인 엘 몬테(El Monte) 출신이(라고 한)다. 사실 어떻게든 베이 에리어하고 엮을려고 이렇게 말은 했다만, 그 동네 땅덩이를 고려하자면 이건 마치 부산 사람에게 '어쨌든 한반도에 있으니 서울 출신이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리수인 듯. 좌우간 이들은 필자(...)가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엮으려고 한 베이 에리어 쓰래쉬 메탈이라 불리는 소음의 전통에 매우 충실한 편이다. 근자에 여러 신진 밴드가 나타나 '니들이 쓰래쉬를 알아?'를 외치며 '쓰래쉬 메탈 부흥회'를 이끌고 있지만, 유명한 밴드만 찾아 듣기도 버거워하는 얼치기 리스너로서 이렇게 80년대, 90년대에서 그대로 툭 튀어나온 듯한 스타일의 초짜 쓰래쉬 메탈 밴드를 접해 본 적이 없는 탓에 무지하게 과거에 충실한 이들의 음악이 외려 참신하게 다가온 면도 없잖아 있다. 듣보잡 그 자체인 이들처럼 '지하'에선 엄청나게 많은 '듣보잡' 밴드들이 이런 옛날 쓰래쉬를 하고 있겠지만, 아마도.

요즘 쓰래쉬 리바이벌 밴드 가운데 이름 좀 날린다는 밴드들이 모던 헤비니스의 영향력을 굳이 부정하지 않고 그 장점(물론 단점까지도)을 흡수해 이런 저런 방식으로 새로운 쓰래쉬 메탈을 한다면 이들은 진짜 옛날 그대로의 쓰래쉬를 한다. METALLCA, TESTAMENT, EXODUS의 리즈 시절이 떠오르는. Pulse of Terror는 Chuck Billy를 연상케 하는 야성미 넘치는 보컬과 쓰래쉬 메탈 트윈 기타의 정석이라도 공부한 듯이 무난하기 짝이 없음에도 날카롭게 귀를 후벼파는 트윈 기타의 협연에 최소 Lars Ulrich 보단 월등한 실력의 드러머가 주도하는 단단한 리듬 파트가 어우러진 12곡을 담고 있다.

역시나 근자에 유행하는 웃음을 겻들인 쓰래쉬와는 다르게 비장함을 강조한 앨범 제목과 커버 아트워크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데, Pulse of Terror를 플레이하면 '우리가 네놈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야'하며 민방위 훈련, 아니 전쟁이라도 난 듯한 경보음이 울려퍼진다. 이내 규칙적인 베이스 드럼과 탐의 울림 사이로 마치 스케일 연습이라도 하듯 기타가 비집고 나오는 인트로를 지나 찰나의 정적 이후 저돌적인 더블 베이스 드러밍과 리프가 전두엽을 흥분시키며 본격적인 막이 오른다. 이어지는 "Absolution"에선 메인 리프가 전개될 때 일반적인 두다다다 대신 미묘하게 어긋나는 듯한 속도감으로 강세를 주는 베이스 드럼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No Anesthesia"는 긴박한 버스와 후련한 떼창이 빛나는 코러스로 이루어진 곡. 동명 타이틀곡 "Pulse of Terror"에선 중반의 분위기 반전 이후 후반부를 수놓는 기타 솔로잉이 인상적이다. 짧고 굵은 드럼 솔로로 시작해 끈질긴 더블 베이스 드러밍이란 이런 것이다를 들려주는 "Hunger for Violence", 비장하기 짝이 없는 기타 아르페지오와 베이스의 울림으로 시작해 야심 찬 대곡으로 발전하는 "Messiah On Trial"은 밴드의 (물 건너 말로) '뮤지션쉽' 만큼은 결코 듣보잡 수준이 아님을 잘 드러낸 곡이고.

아, 12곡 가운데 6곡이나 이렇게 설명을 하고 나니 더 이상은 뭐라 할 기력이 없다. 이미 오래 전에 140자 이상은 쓸 수 없게 된 내가 이만큼이나 분량을 뽑아낸 것만 해도 기적이지, 뭐. 퀄리티 콘트롤 같은 건 애저녁에 포기한지 오래고. 갑자기 눈에서 땀이, 흠흠. 좌우간 나머지 여섯 곡도 끝내주게 고리타분하고 신나는 오뚜기 옛날표 쓰래쉬 메탈이다. 심지어 소리마저도. Pulse of Terror 의 소리는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인 그 쪽 동네의 노하우와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발전한 기술을 이용해 훌륭하게 다듬어져 있을 뿐 근래 유행하는 쓰래쉬 리바이벌 밴드들의 소리와는 확연하게 다른 옛스런 질감을 뽐낸다.

이런 스타일로 이들이 작금의 음악판에서 얼마만한 지분을 가질 수 있을지는 생각만 해도 안타깝지만, 이토록 정겨운 구닥다리 쓰래쉬 메탈을 이들이 계속 해줬으면 하는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철저한 듣보잡이지만, 앞서 METALLICA를 언급하기도 했듯, 공룡이 리즈 시절인 백악기에 활개치며 만든 Master of Puppets를 이름값에 휘둘리지 않고 즐겁게 들었던 사람이라면 Pulse of Terror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말 비슷하거든. 그 지향 만큼은.

+ http://www.myspace.com/tormentermetal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 > 듣고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RMENTER - Pulse of Terror (2010)  (0) 2012/03/24
ENSLAVED - Axioma Ethica Odini (2010)  (0) 2012/03/12
EVERGREY - Glorious Collision (2011)  (0) 2012/03/12
AUGUST BURNS RED - Constellations (2009)  (2) 2011/11/27
Posted by silent man

Axioma Ethica Odini

이제는 흔하디 흔해진 익스트림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락/메탈의 조화를 추구하는 밴드/음악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을 말하라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OPETH를 대지 않을까 싶다. 칭찬 세례를 거듭하고 있는 비평 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얻어낸 호응 또한 만만찮은 밴드가 됐으니, 더구나 국내에선 뜬금 없이 평일 저녁에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내한 공연을 추진할 수 있는 밴드가 그 바닥(?)에서 OPETH말고 또 있을까 싶을 정도고. 허나 OPETH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것도 아니고, 그에 견주어 모자라지 않을 훌륭한 밴드 또한 많을진데 그 중에서도 ENSLAVED는 절대 빼놓으면 안 될 밴드다.

OPETH가 처음부터 야만적인 데스 메탈의 폭력성과 슬픔이 깃든 신비주의적 정서를 '프로그레시브'하게 풀어낸 것과 달리 ENSLAVED는 바이킹 블랙 메탈의 원조 중 하나로 추앙 받았던 탓에 유독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은 그 쪽 애호가들로부터 '프로그레시브'에 방점을 찍은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변했다고 '이게 뭐냐고' 욕을 먹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요즘은 '메탈'을 버린 OPETH도 변했다고 욕을 먹고 있지만.) 나야 뭐 얼치기답게 거슬러 올라가며 ENSLAVED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바이킹 블랙 메탈하던 시절은 스킵해버렸으니 길게 할 말이 없다만.

기왕 OPETH와 엮어 이야기를 꺼낸 김에 비교를 좀 더 하자면, 것도 최대한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OPETH는 '데스 메탈 + 프로그레시브 락'이고 이들은 '블랙 메탈 + 프로그레시브 락'이다. 여기서 OPETH의 프로그레시브 락이 CAMEL의 그것이라면 ENSLAVED의 프로그레시브 락은 PINK FLOYD 그것이란 이야기가 많다. 한 마디로 얼핏 보면 비슷해도 자세히 보면 굉장히 다르다는 건데. 단순히 느낌만 따져보아도 OPETH가 오컬트에 기반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함에도 불길하다기보단 슬프고 아련한 정서가 강한 데 비해 이들은 확실히 조금 더 날 선 표독스러움과 불경스러운 음험함이 드러나는 편이다, 블랙 메탈스럽게. 더해서 본작만 해도 본격(?) 블랙 메탈다운 본격(?) 블래스트 드러밍이나 머신건 비트까진 아니어도 꽤 격렬하게 달리는 편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Night Sight"에서 드러나는 아련한 슬픔이 깃든 분위기와 Grutle Kjellson의 허무하면서도 멜랑꼴리한 보컬, 아트락스런 사운드 스케이프는 OPETH 특유의 그것과 몹시 닮아있기도 하다. 굉장히 재밌는, 좋은, 맘에 드는 노래. 사실 원래 쓰려던, 어느 정도 썼던 글은 이런 글이 아니었는데 OPETH 타령에 가까운 이런 글이 나오고 만 까닭도 "Night Sight"에 꽂혀서 정신줄을 놓아버린 탓이 크다. OPETH 공연도 봤겠다.

ENSLAVED는 Axioma Ethica Odini를 통해 달릴 땐 남 부럽지 않게 달려주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세밀한 연주, 세심한 톤으로 우주적인 혹은 신화적인 웅대함을 그려냈다. 뭐 내가 이렇게 떠들지 않아도 여기 와서 이 글을 볼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미 본작이 유수의 매체들이 선정한 2010년 올 해의 앨범 리스트에 적잖이 이름을 올렸단 사실도 알고 있을 듯.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 > 듣고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RMENTER - Pulse of Terror (2010)  (0) 2012/03/24
ENSLAVED - Axioma Ethica Odini (2010)  (0) 2012/03/12
EVERGREY - Glorious Collision (2011)  (0) 2012/03/12
AUGUST BURNS RED - Constellations (2009)  (2) 2011/11/27
Posted by silent man

Glorious Collision

2010년은 EVERGREY에게 있어 변화의 시기였다. 구성원 다섯 가운데 셋(Jonas Ekdahl, Henrik Danhage, Jari Kainulainen)이 동시에 밴드를 떠난. 그러나 솔직하게 서로 간의 관계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우정이 여전함을 담아낸 영상을 공개하며 맞이한 이별은 아쉬움 속에서도 훈훈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 멤버들의 탈퇴 선언이 있었던 게 2010년 5월이었으니, 2011년 2월 새 단장을 끝마친 EVERGREY는 Glorious Collision을 세상에 내놓았다. Glorious Collision은 2010년 이전 밴드에게 있어 또 다른 전환점이었던 2006년작 Monday Morning Apocalypse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앨범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흔한 말로 셀아웃이라 할 수도 있는 간단명료한 싱글 지향의 헤비메탈이란 면에서. 다만 Monday Morning Apocalypse가 과도기에 놓인, 이리 보고 저리 봐도 2% 아쉬운 앨범이었다면 본작은 거기서 확실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이다. 바꾸어 말해 '프록'이나 '고딕' 같은 말로 수식할 수 있었던 예전 EVERGREY와는 그 만큼 더 멀어진 것이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라든가, 입체감 넘치는 곡구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앨범에서 그런 면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Glorious Collision은 긴장감 넘치는 헤비 리프와 무지막지한 더블베이스 드러밍이 함께하고 있을 뿐 Tom S. Englund를 위한, Tom S. Englund에 의한 AOR이라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곡이 변칙적인 리프와 리듬을 활용하기보다는 명징한 선율을 따라 큰 굴곡 없이 직진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시작부터 기타와 드럼이 광폭하게 몰아치는 "Frozen" 같은 곡도 결국엔 무난한 일직선 구조를 벗어나질 않는다. 비디오로도 공개한 "Wrong"이나, 'I'm Sorry"가 떠오르는 도입부를 가진 "The Phantom Letters", 차분한 슬로우 넘버 "The Disease..."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앨범을 지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지만, 남아있는 두 멤버의 영향력이다. 앞서 말했듯 다른 모든 파트가 보컬을 지원하는 형태의 구성이라 더욱 존재감이 도드라져 보이긴 해도 Tom S. Englund야 으레 그래왔듯 감미로운 야수의 목소리로 절창을 하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Rikard Zander의 분전은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앨범의 첫 곡인 "Leave It Behind Us"에서 드러나듯 전면에 나서 화려한 손놀림을 자랑하진 않아도 단순한 배킹으로 치부하기엔 '배경'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입체적인 질감을 더하는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예전 그 때의 EVERGREY를 원하는 이에게 Glorious Collision은 탐탁치 못한 앨범일 수 있다. 하지만 명징한 선율을 중심에 놓고 정교한 연주와 단단한 소리로 옹골차게 다져낸 헤비메탈을 원한다면? 들어라, 꼭.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 > 듣고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NSLAVED - Axioma Ethica Odini (2010)  (0) 2012/03/12
EVERGREY - Glorious Collision (2011)  (0) 2012/03/12
AUGUST BURNS RED - Constellations (2009)  (2) 2011/11/27
PECCATUM - Lost In Reverie (2004)  (0) 2011/10/15
Posted by silent man